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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팔린 사원(Gawdaw Palin Pato)의 동남쪽 전경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강압적으로 일을 진행하자
백성의 존경을 받고있던 승려 판타구가 와서
"왕이시여, 당신이 하는 행위는 당신의 생각처럼 공덕을 쌓는 것이
아니고, 무자비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앞으로는
왕의 보시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왕은
"존경하는 분이여, 내 보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내 백성이 주는
보시도 받지 않겠다는 것인데, 스님께서는 이 왕국을 떠날수
밖에 없군요"라고 말했고,
왕의 말에 화가 난 판타구는 바간을 떠나 스리랑카로 갔다.
그후 왕은 병이 났고 행동을 뉘우치고 여러 차례 돌아올 것을
요청하였다. 마침내 판타구가 바간으로 돌아오자 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
그를 직접 영접하고 경의를 표하며 직접 보시를 하였다.
그 자리에 고도팔린이 세워졌다.
고도팔린은 바간 왕조 후기를 대표하는 탑이다.
2층 구조로 채택하여 높이를 강조하면서 1층의 규모를
2층에 비해 비교적 크게 함으로써 안정감을 함께 확보하였다.
고도팔린은 나라파티시왕이 건설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난다웅미아(Nandaungmya)왕에 의해 완성되었다.
고도팔린의 중앙탑은 전기 양식인 아난다 사원을 닮고,
탑신부는 중기 양식인 탓빈뉴 사원을 닮았고,
네개의 문이 있는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있다.
1층에 비해 2층의 탑체를 감소시키고 중앙탑을 뾰족한
첨탑으로 조성함으로써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느낌을 준다.
고도팔린의 높이는 55m로 바간에서 두번째로 높지만 수평적 안정성과
수직적인 고도의 균형으로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평가된다.
정문인 동쪽문을 들어서면 내부는 비교적 밝은 편이다.
건물이 높아지면서 위로 많은 창문을 만들어 실내는 이전에 비해
밝아졌다.
그리고 위의 하중을 직접 받지 않는 통로 부분은 더 넓어졌다.
넓고 밝아진 통로에는 18세기 꼰바웅 왕조시대에 제작된 벽화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떨어져 나가고 그자리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졌다.
다만 내부에 모셔진 사방불의 광배(光背)에 벽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불상들은 모두 향마인을 취하고 있고,
새로 보수하면서 개금을 했다.
고도팔린은 흰색 사원이다. 여러차례 진행된 세척작업과
보수공사로 스투코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1975년 지진으로 훼손된 것을 수리하면서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에야와디강에 자리한 고도팔린은 일몰때가 되면 석양의 햇살과
강에서 반사된 빛으로 인해 황금색으로 빛난다. 그러나 현재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통제되고 있다.
고도팔린 파토 건축물은 후기 바간 양식가운데 최고로 간주된다.
참조: 황금불탑의나라 미얀마(서성호 지음),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차장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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